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케패스 전투 (문단 편집) ==== 4월 11일 ==== 안케패스 정상 19번 도로에서 약 200여미터 높은 지역인 600고지 1중대는 중대본부, 1소대, 화기소대 및 연대지원중대에서 파견온 106밀리 무반동포 병력이 배치 되어 있었다. 1중대 기지는 중앙에는 관망대가 있으며, 기지 360도 방면으로 1미터 깊이의 교통호로 연결된 유개호와 무개호가 5미터 간격으로 36개가 구축되었고, 5중 철조망에 수많은 지뢰 및 크레모아로 우주방어를 자랑했다. 1개 소대 병력으로 적 1개 연대를 수일간 막아낼 수 있게 만들었는데, 문제는 방치해둔 638 고지도 마찬가지라는 거다. 04시를 기점으로 안케패스의 최고로 중요한 638고지에 매복해있던 적군은 북쪽 500미터 지점에 있던 기갑연대 1중대를 기습공격하였다. 10시에는 베트남군의 공격으로 19번 도로의 교량과 3m 크기의 도로대화구를 만들어서 도로가 일부 파괴되어서 사단의 공병중대가 즉각 복구를 하게 된다.(14시에 현장 도착하여 17시에 복구완료.) 이때까지만 한국군은 큰 저항이나 적의 공세라고 예측하지도 않았고 철군준비 때문에 병사들 자체도 많이 경계심이 풀어져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군의 최악의 실책으로 작용하게 된다. 16시를 기점으로 월남군 44연대에서 베트남군의 연대급 병력이 안케패스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는 첩보를 접했지만 사태관망만 하고 있었다. 게다가 638고지는 매복 후 철수한 상태였다. 하지만 다시 17시에 매복조를 투입하기 위해서 638고지로 1개 분대 병력을 보냈다가 638고지에서 적과의 교전이 벌어진다.(1명 실종)[* 포로로 잡힌 후 자결한 것으로 추정.] 한국군 기갑연대 1중대가 보유한 화력을 총동원하여 매복 및 수색조를 지원했으나 매복조를 지원하던 1중대 1소대장 임만철 중위는 적이 1개 중대급 병력이라는 보고와 함께 638고지에서 퇴각하게 된다. 실제로는 급한데로 적이 1개중대라고 말했을 뿐이지 끝까지 적의 규모는 미상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